
(진도=진도레이다) 지경준 = 진도의 4월 바람은 유독 짠내가 짙다. 단순히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 탓만은 아닐 것이다. 팽목항을 맴돌던 통곡이, 가족을 잃은 자들의 마르지 않은 눈물이 아직 이 땅의 지층 깊숙한 곳에 스며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세상이 무너졌던 바다, 그 앞에서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겠노라 약속했다.
하지만 참사 12주기, 열두 번째 봄을 맞이한 세월호 선체는 목포 신항에서 속절없이 붉게 녹슬어 가고 있다. 더 뼈아픈 현실은 4.16의 교훈을 담아 진도에 건립된 ‘국민해양안전관’의 현주소다. 연간 이용객 2만 명.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치는 초라한 성적표다. 400억 원이 넘는 막대한 혈세가 투입된 이 공간은 어쩌다 찾아오는 이 없는 ‘외딴섬’으로 전락해 버렸는가.
이것은 기억의 방식을 물리적 공간 안에만 가둬버린 행정 편의주의의 참담한 실패다. 애도는 건물을 짓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꿈꾸고 현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는 ‘사람 사는 세상’과 ‘실용적 민생’의 본질은 결국 생명권에 있다. 억강부약(抑强扶弱). 약자의 생명이 자본과 시스템의 논리 앞에 헛되이 스러지지 않는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자 행정의 의무다.
건축가 유현준 교수는 그의 공간 철학을 통해 *”공간은 사람과 상호작용할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해양안전관이 그저 재난을 전시하는 거대한 무덤이나 관료들의 치적을 위한 박제된 기념비가 되지 않으려면, 진도 군민의 일상과 맞닿은 살아있는 공간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또한,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치열하게 기록해 온 홍은전 작가의 시선처럼, 우리는 이 공간을 통해 *”가장 취약한 이들(어린이, 장애인)의 생명권이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묻고 답해야 한다. 재난의 기록은 과거형이 아니라, 미래의 참사를 막기 위한 현재 진행형의 투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도군은 해양안전관의 적자를 두고 중앙정부의 지원금에만 목을 맬 것이 아니다. 진도교육지원청의 탄소중립 실천 프로그램 등 지역 교육 인프라와 결합하고, 청년과 아이들이 모여 안전과 생명, 그리고 생태계의 공존을 논의하는 ‘실용적 교육의 장’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우리가 잊지 않겠다던 약속은, 고작 녹슨 철제 구조물 앞에 멈춰 서기 위함이 아니었다. 공간이 숨을 쉬고, 그 안에서 아이들이 안전을 배우며 웃음 지을 때, 비로소 살아있는 자들은 죽은 자들을 온전히 애도할 수 있다. 슬픔을 넘어선 실용적 대안만이 그 날의 바다에 바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