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지만, 역설적으로 그곳에 기대어 사는 이들에게는 1m의 구역이 곧 목숨줄과 같다. 최근 진도를 비롯해 전국 각지의 어촌에서 벌어지는 어업권 분쟁은 생계를 향한 어민들의 절박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해 타 지역 서해안 꽃게 산지에서 벌어졌던 ‘S호’와 ‘K호’ 간의 갈등 사례처럼, 한 번 촉발된 어업 구역 다툼은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들의 삶까지 피폐하게 만드는 깊은 상흔을 남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절박한 생존의 현장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구역 시시비비가 붙으면 상대의 통발 줄을 끊어버리고 자신의 어구를 들이미는 식의 원시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이 난무한다.
유시민 작가는 평소 국가와 행정의 존재 이유에 대해 “합법적인 폭력(강제력)을 독점함으로써 시민 간의 사적 복수를 막고, 논리와 법 테두리 안에서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그의 논리를 빌리자면, 바다 위에서 벌어지는 통발 훼손과 구역 강탈을 묵인하는 것은 곧 행정권의 직무 유기다. 행정이 뒷짐을 지고 ‘주민 자치’나 ‘당사자 합의’라는 명분 뒤에 숨을 때, 권력의 공백을 채우는 것은 결국 목소리 큰 자의 억지와 폭력뿐이다.
또한, 마강래 교수가 지적하듯 ‘지방 소멸’은 단순히 인구 숫자의 감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역 사회 내부의 신뢰가 무너지고 구성원 간의 갈등을 치유할 시스템이 부재할 때, 공동체는 안에서부터 썩어들어가며 소멸을 가속화한다. 어민들이 서로를 불신하고 언제 내 어구가 잘려나갈지 몰라 밤잠을 설치는 어촌에 미래를 걸고 정착할 청년은 없다.
반칙과 특권 없이 땀 흘린 만큼 정당하게 대우받는 ‘사람 사는 세상’의 원칙은 캄캄한 밤바다 위에서도 예외 없이 지켜져야 한다. 지자체와 해경, 해양수산부는 갈등이 터진 후에야 수습하는 사후약방문식 대응을 멈춰야 한다. 바다의 구역을 명확히 데이터화하고, 분쟁 발생 시 관할 관청이 즉각적이고 강제력 있는 중재에 나설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갈등의 비용을 더 이상 힘없는 어민들의 눈물로 치르게 해선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