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도 장날 읍내로 향하면, 장바구니를 든 채 버스를 기다리는 촌로들의 굽은 등과 자주 마주친다. 조금시장은 진도의 심장부와 같지만, 무거운 짐을 이고 진 늙은 어르신들이 버스를 기다리다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300미터나 떨어진 화장실까지 걸어가야 했던 과거의 풍경은 팍팍한 농어촌의 서글픈 민낯이었다. 젊은이들에게 300미터는 가벼운 산책 거리일지 모르나, 관절이 닳아버린 노인들에게는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고단한 고갯길과 다름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진도군이 조금시장 버스정류장에 공중화장실을 개방한 조치는 수백억 원짜리 대형 토목 공사보다 훨씬 더 묵직한 가치를 지닌다.
공간과 도시 생태계를 천착해 온 유 모 교수는 “도시의 진정한 격조는 화려한 마천루가 아니라, 돈을 내지 않고도 누구나 안심하고 머물 수 있는 ‘무료 공공 공간’의 촘촘함에서 결정된다”고 짚어낸 바 있다. 시장통 버스정류장의 공중화장실은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을 지켜주는 뼈대 있는 ‘공간 복지’ 인프라다. 약자들의 이동 동선을 단축하고 생리적 불편함을 덜어주는 행정이야말로, 거창한 구호가 아닌 땀내 나는 삶의 현장에서 작동하는 ‘실용적 민생 안정’의 표본이다.
여기에 인문 철학을 통해 우리 사회의 온기를 설파하는 박 모 교수의 통찰을 포개어 본다. “진정한 공동체의 다정함은 가장 연약하고 소외된 존재들의 일상적 고통에 기꺼이 응답하는 데서 완성된다.” 무거운 짐을 든 채 발을 구르던 어르신들에게 가까운 화장실을 내어주는 일은, 국가와 지자체가 서민의 삶을 어떻게 보살피고 환대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다정한 연대의 증명이다.
거창한 치적보다 이웃의 소박한 존엄을 지키는 투박한 행정. 반칙과 특권 없이 묵묵히 시대를 견뎌온 서민들의 일상을 쾌적하게 보듬는 이 작은 화장실 위에서, 진정한 ‘사람 사는 세상’의 온기는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